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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사전
  • 권동혁 기자
  • 등록 2025-09-01 1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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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사전의 가치는 무엇인가



생성형 인공지능이 전통적 지식 체계를 어떻게 위협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드러내는지 탐구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사전을 지식의 보고이자 사회적 기준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인터넷과 검색 포털, 위키피디아의 등장에 이어 AI가 보편화되면서 사전의 존재 의미는 급격한 해체의 길을 걸어왔다.
이 책은 사전이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특정 담론 체계를 구조화하고 신뢰할 만한 지식의 기준을 제공해온 ‘담론의 구성체’였음을 상기시킨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답을 생성하는 시대에도, 전통적 사전이 지녔던 신뢰성·비평성·담론적 맥락은 쉽게 대체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브리태니커의 역사와 몰락, 한국어판 사전 편찬 경험, 근대 문학과 사전의 동반적 운명 등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사전이 단순한 출판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와 지성을 담은 장치였음을 드러낸다. “진짜와 가짜”가 혼재하는 AI 시대, 지식의 본질을 재성찰하며 사전이 여전히 유효한 지적 자산임을 제시한다.


전통적인 사전은 본질적으로 지식과 정보에 대한 비평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다. 지식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비평이 실종될 경우, 비평 없는 창작, 비평 없는 대중음악과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며, 그 결과 아마도 대중 추수적인 경향이 가장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이 비평적 관점을 포기한다면, 사실상 집단 지성의 플랫폼이라는 기술적 토대에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으로 사전에 대한 논의는 끝날 것이다. 사전은 마치 동물원이나 식물원 같은, 일정한 비평적 관점이 투영된 공간과 유사하다. 자연을 알기 위해서 자연 그 자체를 약육강식의 생태계 그대로 만나 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자를 보여 주기 위해 모든 어린아이를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마라 국립 공원에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곳에 간다고 하여 모든 동물을 만나보기도 어려울 뿐더러, 대단히 위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동물원이라는 틀은 유지하지만, 관람자 마음대로 어떤 동물이든 기증하고 수용할 수 있다고 할 경우, 사실상 유기된 개와 고양이로 넘쳐서 정작 동물의 다양성을 일목요연하게 관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사전의 본질’이 상실될 경우, 사전의 미래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01_“사전의 전통적 의미” 중에서

근대 계몽주의를 이끌었던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가 《백과전서(Encyclopedie, ou dictionnaire raisonne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etiers)》(1750)에 중세 이후 학문 체계의 기본이었던 신학·법학·철학·의학에 더하여 새롭게 나타났던 과학과 기술 항목들을 신학과 대등한 위상으로 다루었을 때, 이는 그 내용보다도 구조에 의하여 당대의 종교적 권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담론’의 출현으로 표상되었다. 그 영향을 받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펴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Encyclopaedia Britannica)》(1768) 초판의 이름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또는 새롭고 완벽한 예술 과학 사전(Encyclopaedia Britannica; OR, A DICTIONARY OF ARTS and SCIEN- CES, COMPILED UPON A NEW PLAN)》이었다는 사실은, 그사이에 ‘예술(기술을 포함한)’과 ‘과학’이 신학·법학·철학·의학보다 더 가치가 있는 ‘최신 담론’으로 선호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즉, 백과사전은 담론의 귀납적 결과물이면서, 또한 연역적으로 담론의 생산과 유통에 기여하는 네트워크의 한 중심이었던 것이다.
-03_“사전, 담론의 구성체” 중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은 학습한 데이터의 범주와 규모 안에서 마치 인간의 뇌를 해킹하듯 작동한다. 학습한 데이터 안에 포함되어 있는 무수한 왜곡과 편견, 때로 서로 모순되는 주장, 혐오와 차별의 관점, 인간의 저열한 감정을 겨냥한 선정주의, 서로 층위가 다른 담론 자체도 인공지능은 편견 없이 분석하고 알고리즘을 통해 추출하여 결과를 제시한다. 이에 따라 인간이 통상적으로 원하는 그럴듯한 이야기, 때로 데이터를 조합하여 생성한 환각까지도 결과로 제시된다. 그러다 보면, 인간과 사회의 운명을 좌우하는, 때로 민주주의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을 수많은 결정이 그 논리구조가 밝혀지지 않은 채 사용자에게 제시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06_“생성형 인공지능의 특성” 중에서

심리 철학과 언어 철학 연구자로서 의식의 문제와 철학적 좀비 사고 실험을 대중화하여 이미 30대에 현대 심리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던 차머스는 2005년 위키피디아에 수록된 자신의 생애와 활동 내용에서 부정확하거나 오래된 정보들을 발견했다. 차머스는 이를 계기로 집단 지성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던 위키피디아와 같은 온라인 정보 소통 과정에서 오류가 어떻게 파생되고 확산되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이는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기록하기로 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위키피디아에 있는 오류들을 바로잡았다. 일부 내용들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철학적 이론에 대한 부분에서 그가 변경한 내용들은 다른 편집자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다시 부정확한 내용으로 수정했다. 차머스는 토론방을 열고 익명으로 참여하여 자신이 편집한 내용에 대해 설명했는데, 자신에 비하면 당연히 비전문가임이 틀림없을 다른 토론자들의 반박을 받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물론 차머스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참여했다면 이런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이 없지 않았지만, 이 사례 자체는 디지털 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집단 지성의 구조와 한계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전해지고 있다.
-09_“인공지능 시대의 지식” 중에서



장경식
한국백과사전연구소 대표다.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통해 사전학, 한국 현대 소설과 현대 문화를 연구했으며, 한국브리태니커사에서 한국어판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 편찬에 참여한 후 편집장, 편집 개발 담당 상무를 거쳐 대표를 지냈다(1992~2015).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거미여행〉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 교수를 지냈으며(2003~2015), 한국사전학회의 창립 회원으로 출판 이사 등을 거쳐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2002~ ). 디지털 시대의 사전과 지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 관련 학회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저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2013), 《세계의 백과사전》(2016, 공저), 《디지털 시대의 사전》(2019, 공저), 《디지털 인문학과 사전》(2022, 공저) 등을 펴냈으며, “한국 현대 백과사전의 담론적 성격에 대한 시론”(2021) 등 여러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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