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HOW CIVIL WARS START
아노크라시, 민주주의 국가의 위기
지난 30여 년간 학자들은 1백 년 가까운 내전의 역사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 모음 몇 가지를 활용해서 하나의 답에 초점 맞추었다. 학자들이 처음 발견한 한 가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실인데, 폭력적으로 바뀐 집단들이 대체로 정치 과정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은 투표권이 제한되고 정부 공직에 거의 전혀 들어가지 못한다. 정치권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하지만 학자들이 발견한 폭력의 가장 유력한 결정 요인은 한 집단의 정치적 지위의 궤적이다. 일단 권력을 잡았다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특히 싸움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위 격하downgrading>라고 지칭한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변이가 많지만,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나라에서 누가 폭력을 개시할지를 예측하는 신뢰할 만한 방법이다.
민다나오 모로족은 식민 통치 과정에서, 그리고 필리핀에 통합된 뒤에도 다시 권력을 점점 잃어 갔다. 한때 그 지역을 통치하던 이들이었다. 다투, 술탄, 라자가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고, 토지 분배를 결정했으며, 어떤 문화 관습을 지킬지를 정했다. 그러다 필리핀 정부가 훨씬 수가 많은 가톨릭인들로 하여금 민다나오로 이주하게 –그리하여 현지의 무슬림들을 밀어내게-장려한 뒤에야 폭력 사태가 시작되었다. 마탈람과 동료 무림들의 지위가 격하되었다. 토지 소유와 고용 기회, 정치권력의 측면에서 그들이 지위를 상실했다는 증거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땅을 침입한 사람들에게 생계 수단과 문화를 빼앗기고 있었다.
현대 사회의 많은 내전은 이런 양상을 따른다.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의 정치학자 로저 피터슨은 동유럽 나라들의 20세기 정치사를 연구하면서 정치적, 문화적 지위의 상실이 이 지역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불씨 역할을 했음을 발견했다. 분열된 사회의 수백 개 종족 집단을 연구한 듀크 대학교의 정치학 호로위츠도 동일한 결과를 발견했다. 전쟁을 시작하는 종족 집단은 나라가 <자신들의 것이거나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위 격하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내전을 시작한 주체가 크로아티아인이나 보스니아 무슬림이 아니라 세르비아인이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민다나오의 모로족과 마찬가지로, 세르비아인들도 자신들이 나라의 정당한 상속자라고 보았다. 그들은 한때 직접 통치했다. 유고슬라비아가 창건되었을 때 최대 규모의 종족 집단이었고, 군대와 관료제에서 대부분의 고위직을 차지했다. 세르비아인들이 크로아티아에 이어 보스니아에서 폭력 사태를 개시한 것은 두 지역이 연방에서 탈퇴하면 자신들이 상당한 권력을 상실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수니파가 이라크에서 전쟁을 시작한 것도 미국 침공 이후 자신들이 권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모로족과 세르비아인, 수니파는 모두 지위가 격하되었고, 전부 폭력에 의지했다.
지위 격하는 정치적, 인구학적 사실인 만큼이나 심리적 현실이기도 하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기독교도든 무슬림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지위가 격하된 파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집단의 성원들이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지위가 상실됨을 느끼고 그 결과로 원한을 품는다는 사실이다. 여러 사례에서 원한과 분노가 파벌을 전쟁으로 몰아가는 듯 보인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피어런과 레이틴은 스리랑카 싱할라족이 싱할라어를 국가 공용어로 만들려고 하자 <타밀족이 곧바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타밀족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경제적 지위가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거의 언제나 불의가 벌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권좌에 있는 이가 누구든 간에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고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갈 권리가 없다는 믿음이다. 지위 격하는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라 지위가 역전된 상황인 것이다. 지배적인 집단이 어느 순간 누구의 언어를 사용하고, 누구의 법을 집행하며, 누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옮겨 간다.
인간은 원래 지는 것을 싫어한다. 돈을 잃거나 게임에서 패하는 것, 일자리, 존중, 파트너, 그리고 물론 지위를 잃는 것을 싫어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각 실험에서 대상자들에게 가령 1백 달러를 딸 확률이 50퍼센트인데 1백 달러를 잃을 확률도 50퍼센트인 도박에 참여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대다수의 사람이 이 도박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원래 잃는 것을 싫어한다. 이득을 얻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손실을 복구하려는 동기가 훨씬 강하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의 가난이나 실업, 차별을 참을 수 있다. 조잡한 학교나 열악한 병원, 방치된 기반 시설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참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 원래 자기 것이라고 믿는 장소에서 지위를 상실하는 것은 못 참는다. 21세기에 가장 위험한 파벌은 한때 지배적이었으나 쇠퇴에 직면한 집단이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본문 中에서